[한] 저항의 역사 : 2021년 미얀마, 1980년 광주

소중한 (오마이뉴스 기자)


© 데이비드 돌린저, 1980년 광주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오랜 기간 군부독재의 핍박을 받던 아웅산 수지가 2016년 정권을 잡았을 때, 우린 미얀마가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뀐 건 껍데기뿐이었다. 미얀마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곳곳을 잠식했던 '악마'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주춧돌이 부실한 집은 금방 무너지기 마련이다. 2021년 2월, 허약했던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5년 만에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대한민국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한반도 첫 민주공화국(1948년 8월 15일)의 첫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종신 독재를 이어가려다 참혹한 부정선거를 일으켰고 결국 시민의 손에 의해 쫓겨났다. 1960년 일어났던 이 사건을 '4.19 혁명'이라고 부른다. 이후 대한민국은 의원내각제를 도입했고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하지만 1년 뒤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부가 쿠데타(5.16군사정변)를 일으켰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5대 대통령으로 시작한 박정희는 헌법을 바꿔가며 9대 대통령 자리에까지 앉아 있다가 자신의 심복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암살을 당했다. 장기 군부독재를 겪었던 시민들은 1979년 10월 26일 이 사건 이후를 '서울의 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봄은 오래 가지 못했다. 정부 수립 후 긴 시간 독재의 세월을 보냈고, 더구나 1961년 이후엔 군부독재의 길을 걸어 온 대한민국 역시 주춧돌이 부실한 집이었다. 디테일을 장악하고 있던 '악마'는 쉽사리 봄을 허용하지 않았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면서 군내 비밀 사조직을 운영하던 몇몇 군인은 1979년 12월, 1980년 5월 두 차례 쿠데타(12.12군사반란, 5.17비상계엄)를 일으켰다. 대표적 인물이 전두환·노태우인데, 이들을 박정희 군부와 구별하기 위해 '신(新)군부'라고 부른다. 신군부는 1980년 5월 18~27일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손꼽히는 학살을 자행하며 권력을 장악했고, 그들의 수장인 전두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한반도 남서부 도시 광주는 신군부에 저항했단 이유로 처참한 희생을 당하고 말았다. 1997년 국가로부터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아 지금은 '5.18민주화운동'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구심점이 되었다.


한동안 입 밖에 도 꺼내지 못했던 광주의 참상이 서서히 시민들의 눈과 귀를 통과하면서 많은 이들이 저항의 마음을 품어갔고 대한민국 곳곳의 부조리를 깨달아갔다. 덕분에 디테일에 숨어 있던 악마는 더 이상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1987년 6월 다시 한 번 혁명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는 등 민주주의 역사의 전환점을 맞았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불완전지만, 이제 군부 쿠데타를 걱정하는 상황은 아니다. 2015년 국가를 사적으로 활용한 박근혜 정부를 끌어내리기 위해 '촛불혁명'이 일어났는데, 대한민국은 헌법에 따라 입법부·사법부를 거쳐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고 선거를 통해 새로운 권력을 탄생시켰다. 이후 드러난 바에 따르면, 이때도 군대가 움직이려 했으나 그것이 실현될 정도로 대한민국은 허약하지 않았다.


최근 미얀마 쿠데타 세력의 수장인 민아웅흘라잉이 스스로 총리 자리에 올랐다. 그 역시 쿠데타에 저항하는 수많은 시민을 학살하며 권력을 찬탈했다. 수많은 미얀마인들의 죽음을 보며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특히 5.18민주화운동을 여러 차례 취재한 기자로서 동질감이 느껴졌다. 지금 바라는 건 딱 하나다. 광주의 희생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틀로 인정받았듯, 미얀마의 희생 또한 먼 훗날 그렇게 여겨졌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기억하고 기록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 특히 내부보다 외부에서 그러한 움직임이 이어져야 한다. 앞서 설명했듯 광주의 희생은 희석되지 않고 살아 숨 쉴 수 있었던 건 기억과 기록을 이어간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Called by Another Name"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내놓는 데이비드 돌린저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그는 41년이 지난 지금도 광주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다. 2021년 미얀마를 목격한 우리에게 그는 소중한 지침이다.

소중한

오마이뉴스 기자

매년 5.18민주화운동 기획을 이어오고 있으며 2021년엔 '두 여성의 5월'로 5.18언론상을 수상했다. 현재 미얀마 현지 기자들과 함께 <나는 미얀마 기자다 - 위기의 저널리즘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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